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 컬처덱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 컬처덱

<들어가며>

일단 공식적인 얘기부터.

아름다운 재단.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을 서울시의 대표 비영리 재단 중 하나입니다. 아름다운 재단이 하는 일은 수도 없어요. 하나로 퉁치자면 사람들의 선의를 모아 필요한 곳에 분배하는 역할이랄까요. 재단의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새롭게 정립된 방향성을 전사에 공유하고자 이번 컬처덱을 제작하기로 결심하셨대요.


그리고 안공식적인 얘기를 시작합니다.

일단 팀장님과 간사님을 만나뵀어요. 재단은 경복궁역에서 한참 걸어가야 있습니다. 시작했을 때가 추운 겨울 그 잡채였는데 입 돌아가고 빙판길 비보잉을 몇 번을 반복해야 했어요. 처음 팀장님과 간사님을 뵀을 땐 우와아앙 어서오세요!! 분위기였는데 실제로 얘기를 하다보니 걱정이 한가득이셨습니다. 얘기인즉 이러했어요.

<그들의 고민>

무려! 지난 1년이 넘도록, 아름다운 재단은 미션과 비전, 핵심가치를 맞추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어요. 보통 이런 걸 할 땐 몇 가지의 부정적인 풍경이 예상될 수도 있잖아요?

TF몇 명이 원형탈모각으로 쏟아붓는
휴먼굴림 워크샵이라던가,
또는 대표님의 답정넌 워크샵,
아니면 모두가 응, 그래 그거 맞는 것 같아.
라며 오케이 그냥 그걸로 하자는 결론의 워크샵.

하지만 이 분들은 뭐랄까. 단어 하나를 놓치지 않아요. 보통 제가 진행하는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언어'거든요.

이 간사님들은 언어에 대한 장인정신이 있었단 말이죠. 그렇게 무려!! 1년 내내 엄청난 양의 프로젝트를 수행해 온 것이에요. 프로세스를 보니 혀를 내두를 정도인 거야. 사전 과제를 하고, 모여서 1차 토론을 하고, 1차 투표를 하고? 또 모여서 2차 토론을 하고? 2차 투표를 하고? 그 중에 또 패자부활전같은 걸 하고 다시 모여서 3차 투표를 하고?... 사실 이쯤 되면 '아 그냥..아무거나 하자.' 싶은 마음도 올라올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아.

이렇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서 미션과 비전, 방향성을 다시 정립하고 핵심가치를 뽑아낸 것이죠. 근데 이제 고민이 뭐냐... 이게 너무 '재단의 언어'라서 새로 들어온 간사님들은 대략 아득해질 것 같단 것이었어요. 그리고 다소 추상적인 내용들이 있는터라 이걸 좀 더 쉽고 구체적으로 레벨다운 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었던 거에요.

글을 딱 보니, 음. 그럴 법 하더라고요. 글이 너무 커.


<뜨거운 언어>

'뜨거운 언어' 라는 게 있어요. 다들 모여서 우와아아아아!!! 달리다보면 언어의 이해보단 분위기와 언어가 지닌 웅장함에 압도당할 수 있단 말이죠. 그때는 맞는 말 같은데 돌이켜보면 뭔 말인지 모르겠거나, 그땐 다 이해됐는데 지나고보니 너무 추상적인? 또는 너무 깊은 단어들이 등장하는 식입니다. 생각이란 건 보통 '앞으로 치고 나가기'보단 '아래로 파고드는' 경향이 있어요. 고민도 그렇잖아요. 해결의 방향보단 이 세상은 썩었고 난 망했어!라는 결론으로 다다르는 것처럼 언어에 파고들다보면 명쾌해지기보단 더 심오해지는 경향을 보여요. 우린 이걸 지상으로 끌어올려 눈에 보이는 언어로 만들기로 했어요.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미팅을 통해 나왔던 내용들을 연결하는 것이었어요. 컬처덱이라는 게 위에서 정해진 아젠다와 실무진들의 행동양식이 잘 얼라인되는 게 중요한데, 그냥 연결만 시킨다고 되는게 아니라,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느냐를 규정해줘야 하거든요.

이 때 중요한 건 두 가지입니다. 논리. 중요하죠. 논리적 당위성이라고 해요.

"아 이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니까 응당 이렇게 해야지 끄덕끄덕"

그러나 사람은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행동양식을 규정한다는 게 구성원들에겐 부담이기도 하고, 지켜야 할 세부사항들이 늘어나는 일이거든요. 이런 합의된 메시지를 만들 때 중요한 건 정서적 당위성입니다. 이 메시지를 일면식도 없는 외부사람이나 심지어 형체도 없는 CHAT GPT가 뚝딱 만들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납득이 가겠어요? 조직문화는 구성원들의 땀냄새가 느껴져야 비로소 '우리 것이다.' 라는 인식이 생겨요. 메시지를 만들고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이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죠. 이번 컬처덱은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고생한 구성원들의 노고로 완성된 것이었어요. 이러한 메신저의 노력을 내러티브로 풀어주는 것이 몹시 중요했죠.

"우리 이렇게 진짜...엄청 고생해서 만들어낸거야. 이거 그냥 책상에서 한두시간 만에 뚝딱 나온거아냐. 위에서 하라니까 그냥 나온 것도 아냐. 우리 모두 목에 핏대 세워가며 고민해서 합의한거야."

그래서 챕터 하나를 통으로 빼서 우리가 왜 이걸 시작했고,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이야기를 담아내기로 했어요.


<글을 풀어내자>

지난 1년의 모든 히스토리를 정독했어요. 노션에 우르르르르르 정리가 되어있었는데...이거 다 읽는데만 한 세월일 정도로 방대했달까요. 난 솔직히 컬처덱 만들면서 이게 제일 어려워요. 내 회사가 아닌데,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내가 다니는 것처럼 생각해야 해. 몸은 망원동 사무실에 있는데 영혼은 내자동으로 출근한거지. 그래도 아름다운재단은 양반이었어. 나름 썸네일도 붙여서 노션에 깔끔하게 정리를 해놨더라니까요. 보통 정리벽이 아닌 이상 이렇게 하기 힘든데... 나 못지 않은 정리성애자다 싶었다 진짜.

한장씩 한장씩 읽고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뼈해장국의 살바르듯 살살살 글을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노션 페이지만 수십개

소리를 지릅니다. 아아아악!!!!!!!!이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그리고 다시 물어봅니다. 이게 그건가요? 그건 아니래. 다시 살을 살살 바르고... 뼈가 부서지지 않게..살살 글을..엌. 부서짐을 반복합니다. 문제는 문체였어요. 글쓰면서 내 영혼이 나와선 안되는거잖아. 손은 자꾸 드립을 치라고 아우성치고 머릿속으론 "안돼 나는 지금 선의의 가치를 믿는 아름다운재단 간사님이라고." 되뇌이며 분열적 라이팅을 이어나갔습니다.

이게 제일 힘들었어. 자꾸 글이 날카롭게 나와가지고...세상 쓰고보니 꼬장꼬장한 느낌이잖아. 아니면 너무 물러터진 멍게속살같은 글들이 나와서... 그 중간점에서 줄타기하는데, 스릴이 굉장했습니다.

톤앤매너 뿐만이 아니었어요. 단어 하나를 쓸 때도 단어가 지닌 중의적 의미나 구성원들의 정서를 고려해야 했어요. 아름다운재단 내의 조작적정의로 만들어진 새로운 개념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런 것들을 쉽게 풀어내는 일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간사님과 실시간 카톡을 주고받으며 오해가 있을만한 것들을 해결해나갔죠.


그렇게 약 두 달간을 핑퐁핑퐁하며 치열한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간 끝에 간사님과 팀장님의 노고와 우리의 고민과 땀이 합쳐져 결과물이 탄생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결과물로 등장했습니다.

- 왜 시작했고
- 어떤 논의를 이어갔고
- 미션은 어떻게 세웠는지
- 비전은 어떻게 세웠는지
- 핵심가치는 어떻게 뽑았는지
- 그래서 우리가 지켜야 할 5가지의 뜻은 무엇인지
-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인지

하나하나 차근히 써내려갔죠. 개인적으론, 이번 컬처덱 작업은 몹시 감동적이었습니다. 프로젝트 자체보다, 프로젝트를 위해 오랜 시간 구성원들이 만들고 쌓아온 히스토리 때문이었죠. 아름다운재단 간사님들은 자존감도 높고, 고집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형의 가치를 다루고, 선의로 만들어진 '자금'을 다루는 분들인데다, 사회적가치를 함께 고민하시는 분들이잖아요. 모두 자신만의 뚜렷한 기준들이 있단 말이죠. 그럼에도 더 나은 조직이 되고 싶다는 열망하나로 1년 동안 수없는 모임과 워크샵을 한다?... 각자 일도 바빠죽겠는데? 그들의 피로감과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더라고요.

그간의 결과물을 하나하나 뜯어보는데, 그 과정은 결코 피상적이지 않았어요. 단어 하나의 의미도 치열하게 고민했더라고요. 저는 사실 조직문화가 뭔가 굉장히 놀라운 노하우의 산물이거나, 엄청난 비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워크샵의 결과가 문화일까요? 아니죠... 워크샵을 하겠다는 의지와 거기 참여한 사람들의 표정과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문화 아닐까요. 긴 시간 고민한 것들이 왜곡되지 않았으면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 우리의 마음이 더 쉽게 전파됐으면 하는 마음 자체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컬처덱의 첫 장은, 이걸 만든 모든 구성원들에게 전하는 감사와 헌사로 시작합니다. 이런 메시지를 담고싶다는 의지가 조직이 개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잖아요.

내용의 완벽함은 부족할 수 있을거에요.
여전히 남들이 보기엔 추상적일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을 거에요.
또 한발자국 나아갔을거고, 고민하는 방법을 배웠을 겁니다.
그렇게 발전하고 스스로 나아가는 것이 단단한 문화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