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쓰는 언어가 서로 달라서 만든 컬처덱
<들어가며>
저희 아버님은 55년생이십니다. 사실 아직까진 건장하시죠. 팔씨름도 저보다 잘하시는.......(적잖게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저기 자잘하게 아파지실 나이가 되셨습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부모님의 건강에 대해 좀 걱정이 되고 있죠. 그런 와중에 이번에 만난 클라이언트는 잘 기억해놔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01 클라이언트 소개
이번 컬쳐덱의 주인공은 한국시니어연구소 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자칫 올드해 보일 수 있지만, 굉장히 젊고 엄청난 대표님이 운영하고 있는 탄탄한 스타트업이에요. 한국시니어연구소가 다루고 있는 비즈니스 자체가 어르신들이 엔드유저고 구매자가 가족분들인 경우가 많아서 마냥 키치하고 멋진 영문이름을 쓰는 게 좋은 건 아니었을 거에요. 오히려 이렇게 한.국.시.니.어.연.구.소.
엄청나게 직관적이고 신뢰감이 가는 이름 아닌가요. 메인비즈니스는 전국 각지에 있는 요양센터가 고객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고, 일처리가 수월해지도록 솔루션을 제공하는 거에요. 요양보호사와 센터를 위한 구인구직앱도 만들었답니다.
여튼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02 이번 컬쳐덱 컨셉은.
이번 컬쳐덱은 '용어정리'가 메인이었어요. 보도자료 쓰는데 미디어가 어디 신중히 단어를 쓰던가요. 그냥 내가 이해한대로 맘대로 써버리기 일쑤거든요. 근데 한국시니어연구소에겐 이런 단어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거에요. 법적인 이슈가 될 수도 있고, 자칫 오해를 부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챕터를 3개로 쪼개면서 마지막 챕터는 아예 'Language Deck' 이라고 이름붙이고 따로 떼서 사용할 수 있게 분리시켰어요.
보도자료나 외부에서 한국시니어연구소에 대해 언급할 땐 랭귀지덱만 따로 떼서 주는거죠. '이대로 써. 토씨 하나라도 틀렸다간 손모가지'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이번 컬쳐덱은 인쇄용도가 아니라 웹용으로 제작되었어요. 주요 컨셉은 '우린 진지하고 정확하게 말할 것이다.' 입니다. 장식 싫고요, 괜한 잔재주 싫고요, 캐릭터 이런거 안쓰고, 정말. 딱. 딱. 딱. 이거. 이거. 이런 명확함이 중요했어요. 그래서 디자인 자체는 심플하고 간결하게. 대신 가이드를 꼼꼼하게 만들어서 그 안에 딱딱 맞춰 넣었어요. 각잡힌 그런 느낌.
처음 이미지는 이거였어요. 근데 너무 영정사진 같아보여서..바꿈.
제작년까진 저희가 디자인을 꽤나 심도있게 다루었어요. 지금은 디자인파트를 없앴지만, 당시엔 컬처덱의 디자인에도 엄청 신경쓰고 있었답니다.
한국시니어연구소의 로고를 변형하여 8가지 의미로 확장시켰어요. 이 심볼은 나중에 배경에 장식요소 등으로 쓰일 예정이에요. 음...그리고 이렇게 딱딱 떨어져야 하는 경우엔 텍스트의 위계가 정말정말 중요해요. 그래서 컬러, 행간,자간, 사용원칙등을 좀 더 엄격하게 잡고 제작했죠.
컬러 사용규정도 어떤 색과 어떤 색을 같이 써야 하고, 쓰면 안되는 지 등을 규정했답니다. 한국시니어연구소의 메인컬러는 녹색인데, 서브컬러가 메인컬러를 기준으로 채도만 다르게 만든 컬러에요. 이게 자칫하면 여기저기 막 컬러가 중구난방으로 쓰일 수 있어서(쓰다보며 헷갈림) , 어디에 무슨 색을 써야하는 지도 같이 잡아야 했답니다.
레이아웃도 이렇게 잡았죠. 이게 로고의 기울기가 50도였어요. 이제 그럼 계산을 해야겠죠? ..한 변의 길이와 끼인 각을 알 때 어쩌고..해서 계산을 하면 로고의 기울기를 따라 대지를 2등분할 수 있어요. 그리고 170px짜리 칼럼 하나가 딱 남아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좌측에 카테고리를 적을 수 있는 칸이 하나 생기게 됐죠. 자, 이제 디자인 틀도 다 짰으니 뭐해야 겠어요. 그렇죠, 내용을 채워야겠죠?
03 내용을 채우자.
또 이게 시작됐어요!! 이걸 채워주셔라. 빨간색은 요청드리는 거 파란색은 막 저희가 하는 거... 역할 분담해서 내용을 또 꽉꽉 채우기 시작합니다. 이 때 한국시니어연구소의 지운매니저님이 아주 큰 힘이 되어주셨어요. 아니 분명 주니어라고 하셨는데... 일처리가 이게 무슨 축복받은 7강검과 같은 예리함이지? 프로젝트 내내 전집중호흡으로 팔로업해주셔서 정말 빠르고 깔끔하게 일할 수 있었답니다. (업무의 호흡)
이렇게 일하다보면 굉장한 실무자분들과 만날 수 있어요. 저번 회사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렇고, 지금 하고 있는 다른 회사에도 '엄청난 분' 이 있어요. 이런 분들과 함께 한다는 건...큰 행운입니다. 일단 저희 공수도 굉장히 줄어들고, 커뮤니케이션에서 스트레스가 없거든요.
예의를 갖추면서도 명확한 전달과 깔끔한 설명. 사실 디자인할 때 어디를 어떻게 바꿔주세요...라는 걸 글로 설명하기 진짜 힘들거든요. 하지만 진짜 어딜 어떻게 해달라는 게 명확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지하철에서 슬랙으로 살짝 읽고도 아.여기. 하고 떠올릴 수 있었거든요. 말 다했지 뭐.
04 컬쳐덱은 끝났고
그렇게 컬쳐덱은 1,2,3부로 이루어졌습니다. 1부는 우리 회사의 방향성과 미션을 정리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엔 우리의 대전제와 철학, 주요가치, 큰 구조들을 정리하는 거에요. 우리회사 뭐하는 곳인데? 를 알아야 상세업무얘길 할 수 있을테니까요.
2부는 한국시니어연구소가 보유한 하위브랜등 각각의 KPI와 달성목표 등을 상세히 규정했어요. 전체 플라이휠도 이 부분에 담겼죠. 이런 덱을 '플레이북' 이라고도 합니다. 남태희/밥팅커의 '생존을 넘어 번창으로' 라는 책에서 언급한 개념이죠. 업무규정과 목표, 역할과 책임을 명문화시켜 규정한 걸 말해요.
챕터3는 랭귀지 파트에요. 우리가 쓰는 언어들을 깔끔하게 정리합니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손모가지 날라가붕개 정확히 지키라고 앞에 협박도 써놨습니다. 랭귀지 파트는 발송용으로 쓰일 수 있어서 따로 표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저기만 떼어서 보도자료와 함께 전달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렇게 모든 컬쳐덱 작업이 끝나고...
클라이언트에게 우와를 전달해드렸습니다. 최종파일과 함께 선물을 드리는 것이죠. 또, 컬쳐덱 뿐만 아니라 한국시니어연구소의 주요가치가 적힌 포스터도 함께 제작했습니다. 벽면에 쭈루루루루루 붙어서 오다가다 계속 보게 되겠죠. 이번 컬쳐덱의 특징은 매우 딱딱한 포맷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내용에 멤버와 사업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는 점입니다.
한국시니어연구소는 '효율을 위한 디지털화' 를 추구해요. 하지만 그 와중에 '아날로그'를 놓지 않습니다. 바로 휴먼터치 때문이죠. 요양이란 건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슬픔과 걱정과 함께하는 일이거든요. 때문에 핸드폰액정과 컴퓨터 화면만으론 다 해결할 수 없는 불안함이 있습니다. 사람이 직접 다가가 안심시켜야 하고 손을 잡아드려야 하는 이유죠.
얼마나 돈이 들고 비효율이 나온다고 해도, '사람의 손'은 유지한다
그것이 한국시니어연구소의 차별점이나 브랜드를 굳게 만드는 핵심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이번 컬쳐덱이 이렇게 딱딱해진 데에는 이런 따뜻한 마음에 더해진 FM의 각잡힌 애티튜드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시니어연구소의 사업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정책기반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꼼수나 지름길을 택하면 안되거든요.
디자인 하나하나에도 그런 정확함이 잘 묻어나 있어요. 군더더기가 없어서 사실 만드는 입장에서도 속이 다 시원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 더 고령화될 우리 사회에 좋은 리더 브랜드가 되길 기원합니다 :) 머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