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덱? 그런거 만들어서 뭐하냐는 얘길 들었습니다.
<들어가며>
컬처덱 만들다보면 심심치 않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아오, 그거 작년에도 했고, 제작년에도 했고 기원전에도 했고, 선캄브리아대에도 했고. 근데 해봤자 달라진 것도 없고, 노화만 가속화되었습니다.
예스예스, 인정하는 바입니다. 조직문화 그런 거 하다보면 운명의 3대시련이 항상 따라다닙니다.
책상에서 이마짚는 서베이, 두뇌착즙 워크샵, 단내나는 미팅
사실 조직문화가 서베이와 워크샵으로 완성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직문화에 대한 견해는 각자 다르지만, 적어도 컬처덱은 위에서 할 일과 아래에서 올라가야 할 일이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넷플릭스가 서베이와 워크샵으로 컬처덱을 만들었을까...? But, 뭐든 현지화되는 게 한국의 특성인지뭔지 K-조직문화는 유독 TF가 피똥을 싸는데요.
'응 비전도 너희가 만들어, 목표가 너희가 세워, MZ세대 모아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자, 핵심가치도 너희가 뽑아줘, 제도도 만들고...' 이런 식이란 말이죠. (리더=컨펌)
조직문화 TF(어디에선 CA, 어디에선 주니어보드 이런 말을 쓰지만 애니웨이)에게 인류사의 업보를 던져주는 느낌이 있달까요.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면 방법일 수 있겠지만, 확실히 이런 활동을 할 때마다 TF들의 생명력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근데 이게 몇 차례나 반복된다고 하면 다들 건강한 영혼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죠. 최근 만나는 TF분들이 노트북을 켜기도 전 선한숨, 후전원버튼을 누르는 걸 보며 저도 그들의 고충을 세포핵까지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종 <흥, 나는 그런것이 맹목적으로 싫다!> 는 포스를 풍기며 무작정 어차피 안될거라며 헬게이트급 절망멘트를 날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해는 하지만,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들의 절망은 이런 것입니다.
매년 했었다
그래봤자 바뀌는 건 없다.
다 요식행위다.
허울좋은 거 만드는 거 아니냐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그렇다면 도대체 조직문화 활동을 한 후 조직이 어떻게 바뀌길 기대하셨던 걸까요? 갑자기 출근길이 꽃길이 되고, 장미향이 풍기며 행복한 미소로 동료를 맞이하는 꽃나라별나라를 기대하신 건 아닐거고. 구성원들의 의견이 죄다 반영되는 유토피아를 꿈꾸신 것도 아닐테고.
조직문화는 원래 매년 하는 겁니다. 아냐, 매년이 아니라, 그냥 일상에서도 계속 관찰하고 끊임없이 개선하고 고쳐나가는 우리집 뱅갈고무나무같은 것입니다. 물주고 가지치고 가꿔나가며 햇빛도 줘야하고 손 많이 가는 것이 '조직'이란 겁니다. 사람들이 우글이토글이 모여있는데 이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잘 되어가는 듯 하다가도 어디서 뭐가 또 터지고, 이 사람이 만족하면 저 사람은 울고있고...
완벽한 조직문화라는 것은 없습니다. 관리를 받는 조직문화가 있고, 유통기한 넘긴 채 짓물러가는 조직문화가 있을 뿐이죠. 이게 특정한 그 분들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물론 특별히 시니컬한 분도 계시겠지만...
조직문화 활동을 이벤트나 단기 프로젝트처럼 운영하는 조직의 문제도 있습니다. 전제를 깔고 시작해야 해요. 이건 되게 루틴한 거고, '실패'한 게 아니라 당연한 과정일 뿐이라고 말이죠.
생각해보세요. 조직문화가 실패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 매년 승진하시나요? 매년 성장하고 매년 자산이 쌓여가시나요? 아닐 겁니다. 그럼 여러분은 실패한 삶인건가요? 그렇지 않아요. 이건 실패가 아닙니다. 정체도 동결도 후퇴도 있겠지만, 모두 과정일 뿐입니다. 조직문화는 폐업하고 노란우산 적금이 통장에 꽂힌 순간에나 성패를 논할 수 있는 겁니다. 매년 성장하고 매번 나아지는 문화란 건 없습니다.
이러한 실망감을 표현하는 분들은 조직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더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상처와 상실감을 크게 받으셨던 거겠죠. 하지만 진짜 조직을 위한다면 시니컬한 절망멘트보다 이번엔 저거 고쳐볼까? 다음엔 이거 손대볼까? 하면서 셀프인테리어 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다가가야 합니다.
<어차피 안될거야...> 라며 분위기 초치는 말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땐 옆 사람한테 지금 당장 한 대 때려달라고 해주세요.